‘아빠는 딸’사십춘기와 사춘기 사이 길을 걸어가다

‘아빠는 딸’사십춘기와 사춘기 사이 길을 걸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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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딸의 관계는 가까우면서도 멀고, 멀지만 가까운 존재가 아닐까? 영화 ‘아빠는 딸(감독 김형협)’은 가장 가까운 사이지만 서로에 대한 관심, 처한 상황 등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서로에게 관심은 없으면서 오히려 각자가 서로에게 서운한 것들만 풀어놓고 이해를 바라는 이 관계는 많은 관객들에게 가족, 특히 아빠와 딸에 대해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게 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보다는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춘기 딸 도연과 현재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삶을 사는 사십춘기 아빠 상태가 영화 속에서 과연 얼마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해묵은 감정을 와해할 수 있을까?

아빠 원상태(문제윤)은 사십춘기를 앓고 있는 평범한 가정이다. 그는 만년 과장이며, 출세에 대한 욕망보다는 해고되지 않고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는 안전함만을 추구하는 중년 남자다. 그가 일하는 ‘제고처리과’는 창고인지 사무실인지 모를 가장 후미진 구석에 위치해 있다. 이것은 마치 원상태가 그동안 얼마나 무난하게 혹은 아등바등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는지를 보여준다.

딸 원도연(정소민)은 사춘기 여고생이다.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이며, 공부보다는 자신을 치장하는 일, 아이돌 음악, 지호선배(이유진)와의 관계형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렇다고 공부를 아예 못하지는 않는다. 성적은 늘 중위권 이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은근히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이런 자신의 마음에 대해 도연은 상태에게 “아빠가 내 상황이 되어봐!”라고 외친다.

두 사람은 외갓집 동네에서 천년을 자라난 큰 은행나무 앞에서 크게 다투고, 외할아버지 (신구) 간병을 위해 시골에 남겠다는 엄마(이일화)를 뒤로한 채 서울로 오른다. 실컷 다투고 난 두 사람은 급기야 상태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도 크게 다툰다. 다투다보니 차가 반대편으로 움직이는 줄도 모르는 두 사람은 마주오던 트럭과 부딪혀 교통사고를 당하고, 치료받던 병원에서 서로의 영혼(?)이 뒤바뀌었다는 끔찍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무도 자신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도연과 영혼이 바뀐 상태는 자신의 절친인 정신과 의사 정병진(박혁권)을 찾아가 자신이 상태임을 증명하며 처한 상황을 도와 달라 말해보지만, 병진은 오히려 도연의 영혼이 들어가 있는 상태를 한 대 때리면서 크게 타박을 준다.

그 누구도 자신들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상태는 자신의 장인에게 전화를 걸어 은행나무 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7일 동안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면 다시 원상복귀가 된다는 그의 말에 도연에게 절대 다투지 말고 사이좋게 잘 지내볼 것을 다짐한다.

두 사람은 가족이면서도 아빠와 딸이지만 서로에 대한 것을 너무도 모르고 지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도연은 상태의 회사로 출근하면서 자신보다 한참 어린 직장 상사의 타박과 부하직원들의 은근한 무시와 따돌림을 아빠가 묵묵히 견뎌 냈구나하고 깨닫는다. 아빠가 그렇게도 사수하고자 했던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시내버스 차장에 비친 주름 많은 얼굴, 육체적으로 오는 피곤, 낡은 서류가방을 바라보며 서서히 이해하게 된다.

상태는 ‘공부 그 까짓 것이 뭐 어렵겠냐’라며 도연의 학창시절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중위권을 유지하던 기존 도연의 성적은 상태가 친 모의고사로 하위권으로 정점을 찍었다.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왠지 은근하게 기쁜 마음을 표현했던 상태는 도연의 망친 모의고사를 바탕으로 공부 잘하는 것만이 도연의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그동안 사춘기 도연을 왜 자신의 바람대로 충족해주기만을 바랐는지 후회하게 된다.

상태와 도연은 완벽하게 서로가 서로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것은 비단 영혼이 바뀌는 불상사로 인해 깨닫게 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기대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지냈던 것에 대한 자기반성이 아예 겉으로 표출이 되면서 접근된 것이다.

영화 ‘아빠와 딸’의 소재는 흥미롭지만 새로울 것이 없었다. 내용은 진지함보다는 진부한 코믹함에 승부를 걸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같은 소재를 가진 여타의 영화와 비교해 본다면 영화의 흐름과 내용, 분위기에 맞게 혼신의 연기를 펼친 배우들의 주옥과 같은 연기력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1989년생 정소민은 2010년 드라마 ‘나쁜 남자’를 통해 정식으로 데뷔해 연기경력 고작 6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 이 영화가 2년 전에 촬영을 다 마무리 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당시 정소민의 연기경력은 불과 4년차 밖에 되지 않았다. 4년차 젊은 배우 정소민이 ‘헉’ 소리 나올 정도로 40대 중년 남자가 가질 법한 능글스러운 캐릭터를 잘 풀어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잘 만들었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치 못 할 정도다.

1970년생인 윤제문은 이미 충무로에서 ‘명품조연’으로 이름을 날린 연기파 배우다. 1990년 연극으로 정식 데뷔한 윤제문은 영화 속에서 예민하고 소심한 사춘기 소녀 연기를 새침하고 섬세하게 잘 표현했다. 또한 카메오로 나온 개그맨 박명수의 반전 연기력과 예쁘지 않지만 농염한 매력을 뽐내는 배우 이미도 등 조연배우들의 활약은 진부한 소재의 영화를 오히려 새로운 멋이 깃든 영화로 탈바꿈시켜놨다고 감히 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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