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치료의 실현을 위하여 -8편

[오용섭칼럼]통합치료의 실현을 위하여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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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칼럼 통합치료 실현을 위하여 본 편 전편에서 던졌던 의문은 왜 아픈 겁니까? 였다. 한방과 양방의 요법, 한쪽으로 치우치는 사고방식 대신에 두 가지를 유연하게 사용해 보자는 취지로 글을 썼다. 또 그것이 통합치료의 실현이다. 이제는 의학적인 진단으로써의 신체를 떠나서 좀 더 쉽게 아픈 이유를 글로 표현해 보고자 한다.

전에도 얘기 했듯이 사람이 개발해낸 많은 기계들은 모두 사람과 유사하다. 뇌의 역할을 하는 메인보드와 기억을 담당하는 메모리, 그리고 실제 움직임을 실현하는 뼈대와 뼈대를 연결하는 관절역할을 하는 부분 등등.

그래서 기계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길을 들이느냐에 따라 기능의 차이를 보이곤한다. 운전을 빠른 속도로 하는 주인을 만난 자동차는 빨리 달리는 것에 익숙해진다. 늦게 달려 버릇한 자동차는 빨리 달리면 부하가 걸리게 되고 RPM이 올라간다. 그만큼 연료도 많이 소모된다.

사람도 똑같아서 느림의 미학을 철학으로 사는 사람은 빠르게 움직이면 메모리의 오작동을 일으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고 곧 아프게 된다. 원래 느리게 움직이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신체 메모리는 빠르게 움직일 때 이를 잘 못된 입력으로 처리하고 하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또한 사람이나 기계는 모두 힘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치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100kg을 혼자서 들어 올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 한사람이 있다면 100kg을 들어 올리지 못하는 사람이 바보가 아니라 이 사람은 현재 100kg을 들어 올리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현상은 크게는 한사람의 전체를 보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작게는 신체를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중에서 근육을 예로 들어 이야기해 보고자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근육으로 보면 이는 틀린 속담인 듯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근육은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하지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속담은 아마도 단순히 엉겨 붙는 뭉침이 아니라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처럼 함께 협력한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된다.

근육학에서 ‘함께 한다’는 것은 긍정의 의미와 부정의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본 필자는 이러한 것에 재미를 느끼고 공부하는 사람인데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듯이 한 가지 단어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알고 치료해야 진정한 의미의 치료라고 생각한다.

뭉친다는 것과 함께 한다는 것 이런 것들의 참 된 의미를 파악해 나간다면 “왜 아픈겁니까?”의 의문점이 조금이나마 해소가 가능하다.

사람은 대략 600여개의 근육을 가지고 있다. 각 근육이 발휘하는 하는 힘의 비율은 다르지만 어떤 동작을 취할 때 600여개의 근육은 모두 조금이라도 힘을 쓰게 된다. 간단한 동작이라도 쉬는 근육 없이 0.1%의 역할이라도 하도록 설계되어있다.

모든 근육은 형태와 쓰임새에 따라서 역할이 정해져있는데 예를 들면 척추에서 가까울수록 몸을 지탱하는데 많은 힘을 쓰고 멀수록 큰 힘과 빠르게 움직이는 것에 더 최적화 되어 있다. 이렇듯 근육은 서로 유기적으로 역할을 하면서 움직인다. 긍정의미의 뭉침은 바로 이 600여개의 근육이 각자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균형을 이루면서 움직인다는 뜻이 된다.

문제는 부정의미의 뭉침이다. 예를 들어 설거지를 오래 하는 것, 또는 학생들이 의자에 앉아서 오랜 시간 공부하는 것 등 한 자세를 지속적으로 유지함으로써 하나의 근육만을 사용하는 것이 문제이다. 근육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은 어느 정도 한계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근육을 휴식 없이 오랫동안 사용하게 되면 과부하가 발생하게 된다. 과부하는 곧 통증을 유발하고 통증이 생기면 뇌는 더 이상 그 근육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명령한다.

우리가 몰랐던 중요한 사실은 통증에는 느껴지는 통증이 있는 반면 느껴지지 않는 통증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약 어깨나 허리, 무릎 등에서 느껴질 정도의 통증이 있다면 사실 이것은 느껴지지 않는 통증이 꾀나 많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의학용어로 micro-trauma 즉 아주 작아서 우리가 느끼지 못하지만 통증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인데 우리의 뇌는 이 통증을 인지해 그 부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무서운 의미가 된다.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작은 근육이고 우리 몸속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600개의 근육 중 아주 작은 근육하나가 느껴지지 않는 통증을 유발하면 뇌가 그 근육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고 599개의 근육으로 600개의 근육이 활동하는 몫을 해내도록 명령한다. 599개의 근육이 600개의 몫을 해내니 이는 또 다른 과부하를 불러오게 된다.

이렇게 하나의 근육이 뭉치면 또 다른 근육에 영향을 주어 과부하가 걸리고 그로 인해 느껴지지 않는 통증이 증가하고 또 그 영향으로 다른 근육이 과부하가 걸려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연쇄적인 현상이 일어나 결국 우리가 아프다고 느낄 때쯤이면 600여개의 근육 중 약 200여개의 근육만을 사용하는 정도가 된다. 나머지 400여개의 근육은 모두 뭉친 것이다. 이것이 부정적의미의 뭉침이다. 서로 협력한다는 긍정의미의 뭉침이 아닌 따로따로 활동해야 하는 근육이 서로 엉겨 붙어 2~3개의 근육이 하가지의 역할밖에 못해내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이가 먹을수록 움직임이 저하되고 순환이 약화되어 노화현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뭉침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목에서처럼 힘을 빼야한다. 혹자 들은 아플 때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큰 힘을 들이는 운동은 근육이 뭉친 사람에게는 독약이 될 수 있다. 2~3개의 근육이 마치 하나의 역할 하는 것처럼 뭉친 근육을 지속적으로 힘주어 사용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잘못된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최악의 실수를 범한다는 얘기다.

힘을 많이 쓴 근육에 통증이 있다면 그 치료는 무엇인가? 바로 힘 빼기 아닌가?

적절한 운동의 의미는 먼저 힘을 많이 쓴 근육의 힘을 빼고 그 다음 균형 잡힌 움직임을 위해서 뭉쳐야 산다는 긍정적 의미 즉 함께 조화를 이루는 적당한 힘을 줄 수 있도록 근육을 재교육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근육은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 힘을 빼면 아픔도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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