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살아가는 힘의 원천’ 가수 장미화

‘봉사는 살아가는 힘의 원천’ 가수 장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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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화 (본명: 김순애)

1948년 7월 31일생 (작년에 칠순 했다고 함)

1968년 KBS 가수 발굴 노래자랑 탑 싱어 선발대회 대상

‘안녕하세요’ 외 히트 곡 다수

2011년 제6회 대한민국 나눔대상 서울특별시장 대상

2012년 불자대상

현재 봉사단체 ‘아름다운 손길’ 대표

(다른 기사나 자료에 생년월일 등을 잘못 표기한 곳이 많다고 지적했음)

 

문: 언제 가수가 되려고 생각했나?

답: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수가 되겠다고 결심했고, 장미가 예쁘게 핀 걸 보고 그때 이미 이름을 장미화라고 지었다.

 

문: 50년 동안 가수 활동을 하고 있는데?

답: 배로 노래를 불러서 오래 간다. 목으로만 부르면 오래 못한다. ‘안녕하세요’란 노래가 히트해서 나를 좀 장난스럽고 비주얼적인 가수로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가수다.

 

문: 연기 활동도 했던 걸로 아는데?

답: 1973년 ‘안녕하세요’란 영화로 시작해서, 신상옥 필름의 ‘청바지’와 ‘맹물로 가는 자동차’ 영화에 출연했다. 예그린 뮤지컬 ‘종이여 울려라’에도 출연했고, KBS 드라마 ‘구룡반도’에도 출연했었다. (편집자 주: ‘구룡반도’는 홍콩을 주 무대로 한 남북한 첩보 드라마였다)

 

문: 그 당시엔 외국에 나가기 힘들었을텐데, 홍콩에도 자주 갔나?

답: 주인공만 갔었고, 거의 세트 촬영을 헤서 나는 한 번도 못 갔다.

 

문: 요즘 근황은?

답: 17년째 여는 바자회 준비로 아주 바쁘다. 방송 쪽을 담당하는 매니저가 있지만 연락이 나한테 직접 온다. 그래서 더 정신이 없다. (그러면서 스케줄을 줄줄이 얘기하는데, 기억력이 70세 나이가 무색할 정도다.)

 

문: 바자회는 어떤 식으로 여나?

답: NGO단체로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는 ‘아름다운 손길’ 주최로 연다. 이번 바자회는 4월 11일부터 12일까지 서초구청 마당에서 연다. 이전에는 품목이 15개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20개 정도로 늘었다. 사용하던 물품은 내가 입던 옷가지(그래야 2~3번 밖에 안 입었다)뿐이고, 다른 제품은 다 새 것이다. 식품부터 옷까지 다양하다. 10만원짜리 구두를 3만원에 파니까 잘 팔린다.

 

문: 그 제품들은 어떻게 구하나?

답: 기업 협찬으로 충당한다. 크로커다일이나 삼미모피를 비롯해 아동복까지 협찬을 받는다. 사실 협찬을 무료로 받지만, 그만큼 내가 보답 해 주는 경우도 많다. 어떤 때에는 아동복 협찬을 받고, 보답으로 시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식사도 사주고 온 적도 있다.

 

문: 그 수익금은 어디에 쓰나?

답: 이번 바자회 수익금으로 4월 16일에 680분의 불우노인들을 초대해, 떡 등 음식을 드리고 머플러 같은 선물도 드린다. (선물은 수익금 규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오후 2시 반 부터는 그분들을 위한 공연을 한다. 이번에는 탤런트 강부자, 저 장미화, 가수 편승엽, 현당, 주병선 등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출연한다.

 

문: 독실한 불자로 아는데 불교와 연결해 진행하나?

답: 전혀 그렇지 않다. 종교와 무관하다. 만약 바자회에서 상품이 남으면 종교와 관계없이 종교단체 등에 기부한다. 그런데 일부 종교단체에서는 내가 불자라는 이유로 받기를 거부하더라. 이해가 안 가지만….

 

문: 노인들께 틀니 봉사도 했다는데

답: 내가 전에 복지회관에서 식사대접을 하는 봉사 활동을 할 때였다. 아주 비쩍 마른 노인 두 분이 매일 같이 오시는데, 고기 같은 건 안 드시고 밥하고 국 같은 무른 음식만 드시더라. 알고 보니 이가 없으셔서 그랬다. 한 분은 아래 이 하나에 윗니 두 개만 있었고, 다른 한 분도 비슷했다. 음식을 씹지 못하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틀니를 해 드렸다. 딱 한 달이 지나 얼굴이 동글동글한 두 분이 찾아왔다. 처음엔 못 알아 봤는데 틀니를 해드렸던 바로 그 분들이었다.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했는데, 그때 나도 콧등이 시큰하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틀니 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치과 한 곳과 협력해서 내 얼굴을 홍보에 사용하는 조건으로 반씩 부담하며 틀니 봉사를 시작했다. 그때에는 틀니가 건강보험 대상이 아니어서 비용이 비쌌는데, 나중에 건강보험 혜택을 받으면서 임플란트 봉사로 바꿨다. 그 당시엔 임플란트가 정말 비쌌을 때였다.

 

문: 이렇게 봉사를 열심히 하게 된 동기는?

답: 내가 1978년에 결혼했다가 3년 만에 이혼했다. 사업하는 남편의 보증을 섰다가 잘 못되고, (자세한 이야기는 이미 방송에서 했으므로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했음) 후배 가수한테 사기 당하고, 93년에는 피부관리실을 동업했다가 같이 망하고, 정말 너무너무 고생했다. 아무리 죽어라 벌어도 끝이 없었다. 게다가 아들은 외국에 유학 가 있고 어머니는 편찮으시고… 출연료를 낮춰서라도 밤 업소를 12군데 뛴 적도 있었다. 한때 스탠드바가 한창 유행일 때 거기까지 나갔다. 그런데도 빚 갚는 게 끝이 없었다. 아직까지도 빚은 일부 남아 있다.

하도 어려워서 달랑 500만원 갖고 남양주 변두리로 가서 산 적이 있었다. (중간에 이사했지만 지금까지 남양주에 19년 째 살고 있다.) 그 때에는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시골 촌구석까지 와서 살아야 하나’ 하는 마음에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했다. 위스키만 마시던 내가, 소주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자살하려고) 창문 열고 뛰어 내리려고 한 적이 수 십 번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소녀 가장을 돕게 되고 봉사를 하면서 마음을 잡게 되었다. 봉사는 주는 게 아니고, 돕는 게 아니다. 봉사를 해서 오히려 내가 위로 받고, 내가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감사한다는 말을 들을 때 내가 살아가는 길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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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바자회 말고 또 다른 봉사활동은 없나?

답: 많지만, 정기적으로 하는 것으로는 디너쇼가 있다. 매년 700~1200석을 팔아 이익금으로 소년소녀 가장들 월세 내는데 도와준다.

 

문: 활발한 봉사 활동으로 상도 받았는데?

답: 2012년에 불자대상으로 상금 1천만원을 받았다. 그 때 사실 카드값을 막기 어려워 고민하고 있었는데, 세상에 정말 너무너무 고맙고 반가웠다.

 

문: 후배들이 본받으려고 하지 않나?

답: 요즘 이 업계가 굉장히 어렵다. 사실 행사가 많아야 수입이 좋아지는데 국가적인 재난이나 선거 같은 일이 있으면 행사 자체가 없어진다. 게다가 재능기부 형식으로 출연시키려 해도 소속사에서 안된다는 등의 이유로 거부당하기 일쑤다. 한번은 어떤 행사에서 뒤에 쟁쟁한 후배 가수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내가 무대에서 ‘오늘 출연료를 전액 기부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뒤에 나오는 후배 가수들도 따라서 기부하길 바라서였다. 그런데 한 사람도 안 하더라. 나보다 훨씬 잘 사는 후배들인데… 아쉽고 안타까웠다. 많은 가수들이 좋은 일에 동참해 주면 좋겠다.

 

문: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산마김치 대표이사’로 되어 있던데?

답: 7~8년 전에 8천만원을 투자하며 대표가 되었다. 홈쇼핑에 들어가서 김치를 팔았는데 그때 마침 강원도 배추산지에 자연재해가 크게 나서 배춧값이 폭등했다. 팔면 팔수록 손해가 막심했다. 손해만 입고 그만 뒀는데 아직까지 인터넷에 남아 있다. 그 기록을 없애기도 참 힘들다.

 

문: 요즘 미투 운동이 한창인데 혹시 당하신 적은 없는가?

답: 그때도 많았다. 내가 20대 때 지방 공연을 갔는데, 유명 원로 희극인이 갑자기 내 방으로 들어와 나를 덥쳤다. 내가 하도 거부하고 소리치자, 건넌방에서 술 마시고 있던 동료들이 말려서 돌아간 적이 있었다. 1년 반 전에는 오빠처럼 알고 지내던 유명 골동품상이 있었는데, 그가 사무실로 오라고 해서 갔었다. 갑자기 여직원을 은행 심부름 시켜 내보내고 나서 문을 잠그더니, 나한테 와서 강제로 입맞춤을 했다. 평소에 나를 좋아했다나 뭐라나 하면서. 내가 하도 강하게 저항하며 걷어차겠다고 했더니 물러서며 문을 열더라.

 

문: 요즘 미투 운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답: 자신의 권력을 이용한 성추행이나 성폭행은 당연히 너무나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잘못에 대해 잘못한 만큼의 죗값을 치르게 하던가 해야 하는데 너무 심한 경우도 있다. 조민기처럼 죽음에 이르는 경우는 없었으면 하고, 그 가족들에게 까지 피해가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문: 본인 성격은?

답: 나는 너무 솔직하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스타일이다.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동안 아무 소리 안하고 빚을 다 갚아 왔다. 주변에서 ‘돈 많은 영감’ 하나 잡아서 편하게 살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내가 그런 스타일이 아니어서 모두 거절했다.

 

문: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답: 연예인들도 무대 위에서나 촬영할 때가 아니면 일반인이다. 너무 연예인인 척 하지 않기 바란다. 아울러 대중의 사랑으로 먹고 사는 직업인만큼, 사회 봉사를 통해 어느 정도 대중에게 보답하는 기회를 많이 갖기 바란다.

 

문: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는?

답: ‘아름다운 손길 마을’을 만드는 게 내 꿈이다. 소년소녀 가장이나 혼자 지낼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경우 인성교육이 제대로 안된 경우가 많다. 그들이 그 상태로 사회에 나가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겠는가? 그런 아이들을 모아 엄마나 아빠 또는 형제처럼 어울려 함께 생활하고 지도하는,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하고 싶다.

 

문: 끝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답: 올해 들어 행사를 한 번도 못했다. 돈 벌어 좋은데 쓰려고 하니, 많이 좀 불러주시면 고맙겠다. 어디든 달려가겠다. (웃음)

 

* 가수 장미화는 70년대에 밝고 명랑하고 솔직하고 순수한 큐티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정말로 힘든 시기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내내 그녀는 여전히 밝고 거침없는 입담 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 인터뷰를 마치고 남예종 외래교수로 활동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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