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려 음악하지 마라

[성용원 칼럼 ] 성공하려 음악하지 마라

0
SHARE

kakaotalk_20180604_164349736화끈하고 감성적인 국민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 국민들은 뭔가에 꽂히면 끝 장을 보고야 마는 민족이다.
옳고 그름도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논리적인 사고가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싶고 바라는 대로 감정적으로 이리저리 휩쓸려 끼리끼리 뭉쳐 집단을 형성해가며 우기기만 하고 그걸 또 온정주의란 미명 하에 다 받아들여줬다.

정치적 사상과 성향을 떠나 박사모든, 친문이든, 노사모든 그들과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선 이해가 안 되고 언행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과격하고 패권 지향적이다. 그런 현상은 종교에서 자주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기왕 믿는 거 남보다 더 열성적으로 새벽부터 밤까지 예배당에서 살다시피 한다든가, 자기가 다니는 곳(그게 교회든, 성당이든, 사찰이든)만 절대적이고 그 곳의 운영자를 신격화 할 정도니 극단적인 우리 국민성에 관한 사례는 이쯤해도 충분할거라 여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 클래식음악계는 철저히 인물위주로 움직인다. 자신의 감성과 판단, 기준이 아닌 남의 시선, 남의 판단에 의존하는 의타적이고 비독립적인 사고방식 탓인지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1등을 했다고 하면 대번에 영웅이 되고 언론은 기사거리가 생겼다는 듯이 마구 달려들어 스타 만들기에 나선다.

관심이 지나칠 정도로 쏠리게 되고 우르르 몰려가 그 사람만 열광적으로 추종한다. 그런 쏠림현상이 가장 극명하게 집중된 경우가 정명훈의 경우였으며 최근엔 조성진이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냄비근성이란 말로 대변되는 일시적이고 맹목적인 여론몰이와 관심의 집중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교조화가 우려스러운 것이다.

근대 이후 우리는 빈곤과 각박한 현실을 타파해 줄 메시아를 원했고 그래서 누군가 주목받고 각광을 받으면 즉각적으로 소위 “대표성의 원리”가 발동하여 우리는 좀 과장해서 목숨을 건다.맹목적인 애정을 보내기 일쑤이고 자신을 실망시킬 경우 필요 이상으로 욕을 한다.

해방 이후 모든 사회 분야에서 자수성가한, 불굴의 역경과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개인적인 스토리와 영웅담에 위안을 받고 희망을 얻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롤모델로 삼고 삶의 원동력으로 삼았으며 우상화시켰다. 그런 우상은 비판과 비난을 허용하지 않는 불가침의 영역으로까지 승화되었다. 합리적인 의심과 발전적인 조언도 “지가 뭔데 감히”라는 공공연하고 광범위한 공감대로 묵살되고 무시되었으며 마녀사냥으로 매장시켰다.
그게 바로 권력이요 힘이었다. 그러니 모두가 개인적인 성공을 꿈꾸고 그 성공을 위해선 모든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었다.
온 집안은 가능성을 보이는 한 사람에게만 목매달아 성공을 위해서 다른 가족구성원의 희생까지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고 이런 현상이 사회로 확대되어 소수집단의 인권은 무시되고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하라”란 명제로 전체주의화 되었다.
또한 그렇게 해서 성공만 하면 그때까지의 모든 죄악과 악행이 용서되고 미화되었다. 안 그래도 배려와 공감이라 것에 지극히 약한 자기중심적인 국민성으로 잉태된 개인의 인격이 뭔가 힘 있는 자리에만 가면 안하무인이 되어 버린다. 그래도 우린 그럼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정하고 도리어 빌붙어서 또 다른 이익을 추구하려고 한다. 부당한 경우를 당해도 “더럽고 치사하면 출세하라”란 한마디로 속을 삼키고 눈물을 흘린다.

20170106_203229_resized어느 기관의 장이 되면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권력을 잡고 성공하였으니 그걸 공공의 이익과 사회를 위해 환원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고 어떻게 하면 그 권력을 누리고 지속시키고 퇴임 후에도 자리 보존할까 그리고 내가 힘이 있는 동안에 어떻게 내 이상을 펴볼까 하는데 궁리하게 되는 것이다.
국공립기관 음악단체들의 사장이나 경영자, 단장, 감독이란 자리는 개인의 성공으로 올라간 성취의 잣대와 표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자리까지 올라갔으니 거기까지 올라갈 수 있게 도와줬던 사람들에게 보은인사하고 문화사대주의에 젖어 외국 유수의 저명인사들을 초빙하여 자신의 국제적 인맥을 다지는데 활용하는 자리가 아니다.

자기의 아들에게 협연기회 선사하고 자리에서 물러난 후 같이 활동할 수 있는 음악인들을 포섭하는 자리가 아닌 것이다. 자신의 재임기간에 이런저런 일들을 했다고 국회의원 같이 업적과 실적을 내세우는 자리가 아닌 음악계 공공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봉사하는 자리인 것이다.
하긴 교수임용이 음악활동의 목적이고 목표이며 교수만 되어도 누리려고만 하는 사람 천지인 현 실태에 너무 가혹하고 냉정한 도덕적, 공인 잣대가 아니냐고 반문 할 수 있겠지만 국가의 녹을 먹는 국공립기관의 장들이야말로 철저한 사명감으로 사익이 아닌 공익만을 생각하고 임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SHARE